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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이 의미가 없었다고?
어떤 양반이 이런 글을 써서 역사에 아주 정통하진 못하지만 좀 어이가 없어서 반론을 하려 한다.

본래는 트랙백을 걸어야 예의겠지만 뭔 반론듣기가 싫으신지 다 막았으니 링크로 대신한다.

http://legatus.egloos.com/m/9411736

우선 명량해전에 대한 이야기인데...

당시 왜군 진격목표가 상륙로 확보였나?

아니다. 엄밀히 따지만 상륙은 맞지만 정확하게는 서해 바다를 통해 배로 진격해 한강으로 진입 한양을 직접 타격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당시 왜군은 전라도 장악 이후 한양으로 진격하고 있었고 이것을 명+조선 육군이 저지하는 상황이었다.(이런 과정에서 일어난 전투가 직산 전투다.)

이때 왜군은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 전력이 궤멸된 상황을 틈타 무주공산인 서해를 지나, 한강 하구에 까지 병력을 수송. 한양을 기습장악하는 전략을 잡은 것이다. 즉 이 바닷길을 막지 않으면 한양을 통째로 들어 바쳐야하는 상황이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울둘목에서 이순신장군이 13척의 남은 전력을 모아 일본군을 꺾은것이 바로 명량해전.

이 해전의 패배로 왜군은 크게 세가지 작전적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1. 수군을 통한 한양 직격 실패 : 이건 가장 중요한 전략이었다. 육군과 합세해 한양으로의 수륙병진 작전을 펼쳐야 했던 왜군의 최중요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었다. 실제 이순신 장군이 후퇴한곳은 고군산도, 지금의 선유도로 전북군산 근처이다. 왜측 기록으로도 당시 왜군은 전북 부안까지 밖에 상륙 할수 없었으며 한강 하구에 진출했어야 했던 병력이 고작 전북까지 밖에 올라오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상 전략 실패라고 봐야 한다.

2. 조선수군 재건의 단초 : 명량의 승전보는 당시 칠천량의 패배로 흩어진 수군의 재건을 가속화 시켰다. 명량의 승전보로 숨어있던 장수와 배와 수군이 이순신 장군 아래로 재집결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전력은 조선 수군이 다시 재해권을 찾아올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3. 보급의 불안 : 2에서 파생된 문제로 조선 수군이 재건되자 왜 육군은 임진년 당시 보급선 차단의 공포에 떨어야 했고 최악의 타이밍으로 겨울까지 오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 육군도 진격을 중단하고 남쪽에 쌓아놓은 왜성에 틀어박혔고 3개월 후 울산성 전투에서 괴로운 농성전을 해야만 했다.

이것은 명량해전 단 한판의 싸움이 일본군의 전략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는 것인데 전략전 의미가 없다니. 선조와 원균을 까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좀 정확하게 보고 글을 썼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량해전의 문제인데...

잘 생각해보자 과연 노량해전이 의미없는 추격 섬멸전 이었는가? 우선 정치적으로는 임란을 일으킨 주범격인 장수들과 그 침공군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7년 동안 깽판 쳐놓고 무사히 돌아가길 원한다면 그건 양심에 털이 난거지.

전략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 당시 침공했던 왜군을 무사히 돌려보내면? 전력을 보존한 왜의 재침공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병사가 배럭에서 마구 찍혀나오는 것도 아니고 장래에 재침을 할 수 있는 적들의 수를 확실하게 줄여 놓는 것은 의미가 없는가? 그런 의미에서 노량해전은 당연히 벌였어야 할 추격 섬멸전이었다.

마지막으로 태클걸 말은 이건데.

추격섬멸은 전장의 진수로 군사적으로 볼 때 의미가 있든 없든 추격전을 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제발 웃기지 좀 마라. 추격전 잘못해서 박살난 군대가 한 둘이 아니다. 추격 섬멸전은 전술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을때 실시하고 그것도 장수의 여러가지 판단에 기초에 이뤄지는 것이다. 아차 잘못하면 최소가 궁지에 몰린 쥐가 되어 너죽고 나죽자 식으로 달려오는 적부터, 거짓 퇴각으로 인한 복병까지 추격섬멸은 전장의 진수가 아니라 위험난이도가 높은 작전이다. 이걸 의미가 없는데 한다고? 그야말로 기름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일 것이다.

하여간 뭘 까든 말든 다 좋은데 제발 정확하게 분석을 하고 쓰는게 좋을듯 싶다.

P.S 명량 보고 좋아한 애들(즉 일제시대 경험한 노인양반들 빼고)이 과연 일본 역사 날조를 원망할 자격이 있냐?

...... 뭘보면 이런 결론까지 나오는지 도저히 사고 전개 과정을 이해 못해 이 주장은 반박하지
않기로 했다.
by 소울오브로드 | 2014/08/16 00:41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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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해색주 at 2014/08/16 00:59
얼마전에 그 글보고 트랙백 걸어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후로 다 막아 버렸나 보군요.
Commented by 이젤론 at 2014/08/16 01:06
그와중에 선조와 원균을 까는 클라스.(...)
Commented by 효우도 at 2014/08/16 02:16
명량해전을 통해 왜군이 이루려던 궁극적인 목표가 뭐든, 일단 해전의 결과 조선측이 후퇴하고 왜군이 상륙로를 확보햇으면 희생이 컸더라도 왜군이 '해전'에서는 승리한것 아닌가요?
그게 과연 희생의 가치 만큼이 아닌 상처투성이뿐의 승리인가 아닌가는 제쳐두고.
게다가 희생이 컸다고 해도 상륙로를 확보하고 조선을 후퇴시키게 만들정도면 전멸에 가까운 희생도 아닐테고.
반대로 말하자면 만약 조선측이 해안방어 성공하고 왜군이 상륙로 확보를 실패했다면 조선이 '해전'에서 승리했다고 볼 수 있는것 아닙니까? 조선측이 해전에서 입은 피해로 차질이 생기던 말던.
Commented by 소울오브로드 at 2014/08/16 08:46
상륙로 확보라는건 원하는 지점에 병력을 상륙시켰을때 하는 소리입니다. 서울 아니 최소 경기도에 상륙 했다면 전략적으로 왜군 승리지만 전북 부안 그것도 이미 전라도 대부분을 일본군이 장악한 상황에서 자기들 영역권 근처에 상륙해서 뭐합니까? 강산 유람? 그나마도 3개월 후에는 보급로의 위협으로 장악했던 땅을 다 토해내고 물러가야 하는 판국에 말이지요.
Commented by 별일 없는 at 2014/08/16 14:20
전략목표가 최소 하삼도를 먹고 명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얻는다는건데..
전술에선 글쎄요. 이걸 이겼다고 할수 있는건가 (황석산성이나 남원성 같은 이긴전투가 아니니)모르겠지만 전략은
완전 개작살난. 해군도 명량에서 돈좌되고 육군은 직산에서 돈좌되고 결국 후퇴하고 서생포에서 순천까지만 장악했으니 뭐 경남지역은 부분적으로 관할한거 같지만 말그대로 임진왜란(분라쿠)때와 달리 규모는 비슷하게 끌고 왔는데 완전 좆망한 전쟁
Commented by 바람불어 at 2014/08/16 03:54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지만,, 댓글 트랙백 막고서 감정적인 글 쓰는 사람들이 가끔 있더군요.-..-
Commented by 별일 없는 at 2014/08/16 10:50
그냥 저인간 글보고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죠 너무 병맛넘쳐서
Commented by 별일 없는 at 2014/08/16 20:23
아 그러셔요. 그럼 일기장에 적지 그러셨어요^^ 글은 캐시크하게 쓰시더구만 존나 부들부들 하셨나보네~
헐 댓글지웠네 잘생긴 악마님ㅎ 유리멘탈인듯
Commented by 셸먼 at 2014/08/16 19:48
일본 위키피디아에 흔히 나오는 이야기네요.
Commented by 아빠늑대 at 2014/08/17 02:47
처음에 그 글을 보고 트랙백 하려 했더니만 막아뒀더군요. 트랙백도 막고, 덧글도 막고... 하지만 남들이 보게는 하고 싶고... 확실하게 단정하기는 그런데 주장의 면모가 일본애들이 주장하는 것들만 본것 같더군요. 일본 왭에서 명량이나 조선수군의 역할 무용론 같은거 하는 소리들의 판박이였어요.
Commented by 영악한 젠투펭귄 at 2014/08/17 09:47
캬 블로그 지운줄 알았더니 아예 여기 링크된거로 못들어가게 주소 바꾸고 지가 헛소리한건 약판거라고 태세 전환하고 귀신같이 풍신수길 뒤져서 그런거 뿐이라고 하는거보소, 졸렬갑이네.
Commented by 영악한 젠투펭귄 at 2014/08/17 09:52
그리고 그렇게 변명 찔찔거리면서 늘어놓아도 한국이 일본 역사날조 비난할 거리 있냐는 말은 해명에서 쏙 뺌, 명예 일본인갑이신듯.
Commented by wizard at 2014/08/18 11:00
일본군의 목표는 한양점령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해안지역에 축성한 후 정기적으로 하삼도에 대한 초토작전을 전개함으로써 조선의 전쟁수행능력의 싹을 자르려는 전술이었죠. 임진왜란의 교훈으로 보급선을 늘려서는 곤란하다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알다시피 조선의 경제는 하삼도지역에의 식량생산능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런 경제적 기반을 파괴하게 되면 조명연합군이 먼저 대대적으로 공략해올 것이고 그때 그 병력을 대대적으로 섬멸한다는 것이 전략의 개요였습니다. 일본군이 자신들이 축성한 왜성에서 농성했을 때 그 공략이 얼마나 힘든지는 여러전투에서 증명되었습니다. 명량해전의 결과를 강조하는 측에서는 일본군의 최종목표가 임진왜란때 처럼 한양을 점령하고 내륙 깊숙히 진격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정유재란때 일본군의 전략은 수정된 상태였고 명량해전의 결과 일본수군은 결국 목표로 했던 서남해의 광양만까지 진출한 것을 생각하면 조선의 승리였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Commented by 소울오브로드 at 2014/08/18 12:57
다음 포스팅에도 나왔지만 하삼도 장악이 목적인 인간들이 경기도까지 강산유람하러 온것도 아니고 거기기까지 전선을 늘일 필요가 있었나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명량의 해전으로 인해 기껏 장악했던 전라도 지역도 토해내고 해안가에서 농성을 벌이는 결과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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